실인지 부조화를 해결을 위한 작은 노력 1

심리학에서 사용하는 인지 부조화와의 의미 중복을 피하기 위해서 나는 실제 몸이 인지하는 것과 머리가 지각하는 것 간의 괴리를 실인지 부조화라고 이하 표현하겠다. 물론 아무도 동의해주지 않는 용어지만 심리학에서 사용하는 인지 부조화의 의미는 자기 합리화를 하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한 접근이 더 강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 생각에 근본은 같다고 보지만 의미의 접근을 조금 달리하기 위해 내가 설명하려는 인지 부조화를 실인지 부조화라고 하려는 것이다.
  음식물을 섭취할 때는 생각을 많이 하거나 집중해야 하는 일은 왜 자제 되어야 하는가
  대표적으로 영상물을 보면서 식사를 하는 경우, 식사 속도가 매우 빨라지고 순간적인 감흥은 있지만 다 먹고 난 뒤 맛에 대한 감상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단품 식사가 아닌 이상, 아니 단품이라 하더라도 단일 재료가 아닌 이상, 입안에서 서로 다른 맛들이 적절히 섞이면서 발현되는 색다른 감각은 미각 인지에 좀 더 집중할 것을 요구한다. 적절한 맛 조합은 정말 제대로 된 즐거움을 준다. 단적으로 샌드위치 자체로도 여러맛의 조합이지만 샌드위치를 씹으면서 빵이 느껴질 때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면 빵이 커피에 젖으면서 만들어 내는 그 식감의 느낌과 커피의 향미가 어우러져 나도 모르게 감상에 젖고 절로 눈을 감게 만든다. 물론 이를 위해선 제대로된 샌드위치와 커피가 필요하다. 이렇게 맛에 집중함으로서 알게 모르게 현대인에게 악영향을 주고 있는 실인지 부조화에서 조금은 벗어나게 되는 것 아닐까. 이것이 그것을 위한 작은 노력 1 이다.
  인간인 이상 세계의 모든 문화권이 비슷한 부분이 있겠지만 특히 반찬 문화로 유명한 한국인이야 말로 이러한 입 안에서의 맛 조합하기를 더욱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철저히 뇌피셜이지만 입 속 조화를 중시하는 한국사람의 경우가 더욱이 실인지 부조화를 탈피하기 위해 먹을 때 만큼은 음식 자체를 음미하기 위해 노력하고 다른 행위를 삼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미식가 같은 수준의 집중력…

북서울시립미술관, 미디어아트 그리고 아이들

하계역 인근 등나무 공원에 자리잡은 북서울시립미술관. 이런 미술관이 어떻게 보면 문화 소외지라 할 수 있는 강북 깊은 곳에 위치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현재 웹아트를 주제로 전시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아 비주류 예술에 대한 지속적인 전시 지원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감지덕지한 입장을 뒤로 하고 그 자체를 바라봤을 때는 위치적 한계(?)와 미디어아트에 대한 접근 방식에서 아쉬움을 느꼈다.

  기본적으로 시민들을 위한 공간이다. 공원 옆에 위치해 있는 데다 미술관에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도 구비되어 있다. 가족들이 주말에 아이들 손을 잡고 충분히 들를 수 있고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항상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갔을 때는 전시 자체도 일반 시민과 아이들이 이해하기 좋고 교육적 가치가 충분해 보였다. 문제는 동시간에 이루어지는 다른 전시다. 웹아트는 내가 보기에는 일반대중도 이해하기 힘들다. 근본적으로 웹 기술에 대한 이해를 기초로 작품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와중에 체험적이고 관객 프렌들리한 작품도 있겠다만 더더욱이 레트로를 표방하는 웹아트들은 상당히 개념적이고 기술 중심적이다. 그러함에도 일반 성인들은 암묵적인 관람 매너를 지킬 것이고 다른 관람객을 배려할 것이다. 예술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예술 공간에서 막무가내 행동을 할 성인은 거의 없다. 문제는 같이 온 아이들이다. 물론 부모의 입장에서 작품이 이해가 되던 안되던 이 자체로 교육적인 경험이 된다. 문제는 이들이 아이들을 전혀 통제하지 않았을 경우이다. 물론 나도 예술가 꼰대 마냥 미술관이 정숙해야하고 엄근진으로 대표되는 공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정도라는 것은 어디에 가도 있는 법. 아이들이 뛰어놀고 소리 지르고 우는 순간, 부모들의 방임의 정도가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기 시작한다. 나는 우리나라 부모들이 아이들을 아무 규범 없이 미술관에 데려왔다고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미술관측에서의 전시 구성이나 기획 의도 자체가…

인공지능 세미나 이후 머리에 아로새기기

유발하라리의 호모데우스를 읽은 이후로는 인공지능에 대한 관점이 완전 바뀌어 버렸다. 다만 미래는 누가 알 수 있을까. 정보의 바다, 정보 혁명 시대라고 난리가 났던 90년대 2000년대 초에 많은 전자 기기들이 등장했지만 산업혁명 이후로 인간 삶의 형태를 크게 바꾸었던 사건은 아니었다. 전세계에는 아직도 스마트폰을 갖지 못하는 인구가 많다. 물론 그에 못지 않게 작은 화면에 얼굴을 쳐박고 다니는 사람도 많긴 하다만...

  SF를 좋아했기에 SF소설을 써볼까 한다. 이번에도 여러 변덕 중에 하나 이겠지만 플롯이랍시고 작성해 놓은 것이 하나 있고 또 유발하라리가 예측하는 미래 인공지능의 영향성을 스토리에 녹여내 보고 싶다. 물론 유발하라리는 인간은 스토리가 아니라고 했지만 아직 우리는 과거에 얽매여 있다. 우리는 생물적인 진화가 기술의 진화를 못 따라가는 인간이라는 유기체에 갇힌 반인반신이다. 머리는 그 어떤 동물보다도 신적인 기술을 만들어 내지만 육신은 다른 생명체 보다 못하거나 비슷한 능력밖에 지니지 못한다. 정치적이든 유전적이든 어떤 이유에서도 아직은 스토리라는 것에 매료되어 버리는 감성적인 존재이다. 모순적이게도 스토리가 의미 없어질 미래에 대한 스토리를 써보고 싶은 욕망에 사로 잡혀 버렸다.

  인공지능이 감정을 이해하는 수준에 다다르면 그것은 디스토피아를 초래할까 인간을 보완 해주는 밝은 SF적 사회를 구현해줄까. 공상하기를 좋아했으니 그 공상을 조금만 글로 옮겨 보면 재밌을 것 같다. 우선은 디스토피아적 사건부터...

[사진 한 장에 글쓰기] 가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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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일에 한 번이라도 글을 쓰려고 했는데 벌써부터 실패다. 그래서 대충 아무 사진이나 골라 놓고 글을 쓰려고 하고 있다. 사진 한 장 골라 놓고 글을 쓴다는 것도 어려운 것 같다. 일단 사진을 고르는 단계부터가 엄청 고민이 된다. 이제는 사진 한 장에 얽매이지 말고 그냥 아무 형태로나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으로 돌아와서 얘기하자면 나는 돈까스를 정말 좋아한다. 여기서 좋아한다는 것은 돈까스에 대한 미식을 추구하는 시작하는 방향의 좋아함이 아니다. 왠 만큼 맛이 없는 돈까스도 잘 먹을 정도로 좋아한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돈까스의 변종(?)인 가츠동도 빼놓을 수 없는 나의 식탐리스트에 자주 오르는 품목중 하나다. 일본에서만 느낄 수 있는 두툼한 돈까스에 졸인 간장소스와 달걀이 얹어지고 이 것이 한데 어우려져  한공기 순식간에 뚝딱하게 해준다. 게다가 가츠동은 21세기에 참으로 적절한 음식이다. 서양식인 커틀릿 그리고 동양식인 밥과 간장소스가 합쳐진 음식 아닌가 동서양의 조화가 일찍이 이루어진 음식인 것이다. 물론 나는 한식이건 일식이건 양식이건 가리지 않고 좋아한다. 그래도 가츠동이 내 눈앞에 있다면 아마 그 날 하루 정도는 한식을 스킵하고 가츠동을 먹으러 갈 것 같다.
  젓가락 하나만 있으면 가츠동을 해치우는데 문제될 것이 하나 없다. 사무라이처럼 젓가락 쌍검을 들고 밥을 마구잡이로 섞지 않으며 위에서부터 단칼(한젓가락)에 해치워 나간다.

조만간 날을 잡아야겠다. 가츠동을 먹으러...
꼬르륵...

[사진 한 장에 글쓰기] 베네수엘라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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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꾸준히 써보기로 마음을 먹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금세 놓게 된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써보려고 하지만 정말 쉽지 않을 것 같다.

  두서 없는 이야기는 접어두고 베네수엘라에 갔었던 기억을 되살려 보려고 한다. 당시는 2013년으로 지금의 베네수엘라보다는 훨씬 상황이 나았던 시기다. 5월 초순으로 기억하는데 마침 차베스가 건강 상의 이유로 사망한지 두 달 정도 되어가는 시기였다. 나는 당시 사원 2년 차로 이제야 회사에 적응이 거의 다되어가는 상황이었다. 원래는 내가 갈 예정이 아니었지만 거의 출발 이틀 전에 급하게 상사로부터 연락이와서는 내가 가는 것으로 얘기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회사 생활이란 참 스펙타클하다. 불과 이틀만에 지구 반대편 왠만한 한국사람은 가 볼일이 없는 이름도 생소한 나라에 가게 되다니.

  비용 상의 이유로 원래 목적지인 마라카이보라는 베네수엘라 제 2의 목적지로 바로 향하지 못하고 수도인 카라카스에 내려서 국내선을 타고 들어가야 했다. 카라카스 도착 후 약 3시간의 취침 시간만을 가진 채 아침 일찍 국내선을 타러 갔다. 아직도 구 서울역 같은 모습의 국내선 공항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비행기 안에서 인생에서 동양인을 처음 본건지 라틴계 꼬마아이가 눈을 희둥그렇게 뜨고 나를 쳐다보던 모습이 기억난다.

  이코노미석에서의 장시간 비행과 두차례 환승 그리고 한차례의 국내선 환승을 통해 겨우 마라카이보에 도착한 나는 진이 다 빠져 버렸었다. 그 와중에 로컬 호텔의 체크인은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았다. 고생 끝에 체크인을 하고 몇 시간 뒤에 바로 다시 출근까지 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해야만 했다. 막상 한국에서는 야근을 해도 그리고 주말 특근을 해도 내가 특별히 삼성전자(당시에 야근으로 악명이 높았던)에 다니는 바람에 더 고생을 한다고는 생각을 안해봤었다. 그런데 비로소 해외를 나오자 실감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코노미석에서 허리가 부서지는 듯한 고생을 하면서 이동한 시간은 근무시간으로 쳐주지도 않거…

[사진 한 장에 글쓰기] 중독의 순응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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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은 마음의 질병일까? 어딘가에서는 유전이라고 하고 어딘가에서는 비만 바이러스가 있다고 하고...(이번 글은 무슨 X소리를 할려나 보다)   원인이 무엇이든 술을 마시면 아니나 다를까 살이 찐다. 마실 때도 살이 찌고 마시고 다음날도 속이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음식물을 내 몸속에 쑤셔 넣어 살이 찐다. 그리고 몇 일 외로운 날들이 이어지면 술이 또다시 땡긴다. 먹을 것이 땡긴다. 유혹을 감내하는 것이 힘이 든다. 무엇이 맛있고 무엇이 즐거운 순간을 선사하는지 아는 이 반저주의 몸뚱아리는 술과 음식에 중독 반응을 일으킨다. 혼술의 낭만화, 혼밥의 대중화는 머리마저 중독에 순응하라는 자기합리화의 이유가 되어 준다. 하루하루의 순간이 다소 고통스러워진다. 내적 갈등이 이어진다.

  이성이 뚜렷한 날들은 이내 유혹을 참아낸다. 못 참아낸 하루는 후회스러울까? 아마 그럴 것이다. 아침에는 매우 후회할 것이고 오후에는 엉뚱한 생각을 할 것이다. 하루를 굶으면 오장육부에 다 퍼져버린 알코올과 지방에 대한 속죄라도 될까? 속죄 만으로는 속 해장은 아니 될 것이다. 그것은 오장에 대한 아니 특히 위장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이것은 약간의 공포로 다가온다. 과음 뒤에 뭘 먹자니 살이 찌고 굶자니 속이 쓰리고...두렵다. 그냥 넘겨도 될 거 같지만 왜 이리 내 몸뚱아리는 물질적인 것에 탐욕스러운 가를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다시 이성이 뚜렷한 나날들로 돌아와 생각해본다. 맛있는 음식에 술한잔이 떠오르는 어느날, 마음의 브레이끼를 급하게 밟으며 순간적인 충동을 지금이 아닌 계획에 남기는 것으로 대체한다. 잠시 유보 상태에 빠짐으로서 마음을 진정 시켜 본다.

술을 목구멍으로 넘겼던 날들은 기억날 것이고 그 결과는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물리적인 갈등을 끝내고 나는 다시 정서적인 갈등을 시작한다. 아름다웠던 추억 중에 술과 함께한 순간이 적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근데 정말 아름다웠던 가. 일단 기억 속에는 상당히 미화되어 있다. 알코올 몇 모금에 잠시 가식적이나마 충만하고…

[사진 한 장에 글쓰기] 해커하우스 중 My Son Sanctu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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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ỹ Sơn Sanctuary

  해커하우스 기간 중 My Son 유적지를 다녀왔다.  (Mỹ Sơn 미선 or 미썬 O / 미손 X)
  참파(참족)의 유적이라고만 알고 왔는데 힌두 유적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었다. 동남아는 불교 문화가 지배적이라 당연히 불교 유적일 거라는 단순한 착각을 한 것이다. 라오스를 여행할 적부터 들어왔던 참파의 종교가 힌두이즘 일 줄이야... 무려 5년만의 깨달음이었다. 덕분이었을까. 미선 유적을 돌아보는 내내 신선했고 흥미롭게 다가왔다. 물론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어 보통 혼자 여행할 때와는 조금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니콜라스의 가이드도 덤으로)
  아침 공기를 마시며 둘러본 미선 유적지는 여러가지 감상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고대의 흔적 뿐만이 아닌 월남전의 흔적들, 반파된 유적들의 모습이 시간의 불가역성을 느끼게 하였다. 그렇게 1시간 여의 산책을 마쳤다. 정말 오랜만의 아침 산책이었다.